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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스산하게 불기 시작하고 창 너머 나무들은 조금씩 겨울 준비를 하고 있는 11월 중순, 이 계절에 어울리는 좋은 시(詩) 한 편을 누리사랑방 님들께 선물합니다. 곽재구 시인의 [은행나무] 입니다.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 곽재구, <은행나무>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할 것은 모두 준비하고 또 은행나무처럼 떨어뜨릴 수 있는 것들은 떨어뜨려 몸도, 마음도 따스하고 가볍게 겨울 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written by_나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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