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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국내여행

문학과 예술의 감성여행_경북 영천 임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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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인기리에 방송중인 대하드라마 <정도전>을 누리 사랑방 님들은 한 번쯤은 보셨을텐데요, 그 시기를 함께 했던 포은 정몽주 선생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임고서원>을 지난 4일 다녀왔습니다. 



 경북 영천에 위치한 <임고서원>은 이번이 첫 방문이었는데 서원 뒤로 산이 병풍처럼 펼쳐 있고 서원 앞으로는 물 맑은 개울이 흐르고 있었고 개울 안에는 약 5~60 Cm는 족히 될듯한 잉어도 많았습니다. 



 서원 옆 기념관 안의 상영관에서는 정몽주 선생에 관련한 만화를 무료로 상영해 주는데 정몽주 선생의 역대 이름 변천과정과 과거 시험 합격, 또 고려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태종 이방원에게 단심가를 드리는 과정,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 등을 알기 쉽게 만화로 각색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꼭 한 번쯤은 자녀와 함께 와서 만화를 보면 교육적인 부분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익숙한 시조인 <백로가-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를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께서 지으셨다는 것을 <임고서원>의 시비를 통해 처음 알았네요. ^^; 



 임고서원과 개울 사이에는 <선죽교>라고 써 있는 돌다리가 있습니다.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은 이 곳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으면 뒷 배경으로 임고서원이 모두 나오기 때문에 설정샷의 위치로는 아주 그만입니다. ㅎㅎ


(임고서원 관련 유튜브 영상)


 태종 이방원이 쓴 <하여가>의 답가로 정몽주 선생은 <단심가>를 지었다는 것을 사랑방 누리님들은 아실텐데요. 태종은 정몽주 선생을 제거한 후 7년 뒤에 벼슬을 내립니다. 참 씁쓸한 얘기이죠. 

[참 고 자 료]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서원. 고려 말의 충신이자 유학자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553년(명종 8)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603년(선조 36)에 다시 지었으며, 이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643년(인조 21)에는 장현광(張顯光), 1727년(영조 3)에는 황보인(皇甫仁)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65년 정몽주의 위패만을 봉안하여 복원하였고 2001년에는 황보인의 위패도 다시 배향하였다. 경내에는 묘우 표충사, 내삼문 유정문, 강당 흥문당, 정몽주신도비, 유물보호각 삼진각, 문루 영광루, 서재 함육재, 동재 수성재 등이 들어서 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임고서원 [臨皐書院] (두산백과)



[하여가와 단심가 전문]


하여가 [이방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단심가 [정몽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 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임고서원은 우리나라 역사상 두번째 사액서원으로써 사서삼경을 주과목으로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고 선현들께 제사를 지냈으며 인성교육을 우선으로 하는 서원이었습니다. 임고서원은 특히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출생지로써 선생의 일편단심 의지와 고려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잘 보여 주는 우리나라 역사상 상당히 가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북을 방문하시는 분이라면 시간 내서 꼭 방문해 보시길 추천합니다. 주위 경관과 서원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기운이 이틀이 지난 지금도 제 몸에 퍼지는 것 같습니다. 


written by_나프란